본문 바로가기
  • 기록의 힘
역사속 오늘

7월24일 - 오감도

by 죽은척하기 2022. 7. 24.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된 오감도

 

1934년 7월24일 조선중앙일보에 이상한 시 한면이 게재된다.

 

오감도(烏瞰圖)

 

이상

 

시 제1

 

13인의 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조선중앙일보 7월24일)

 

당시 이상에게 시를 써 줄것을 권한 사람은 조선중앙일보의 학예부장으로 있던 이태준이었고 최종적으로 게재를 승인한 사람은 당시 사장으로 있었던 여운형 이었다.

시는 총 30편을 연작으로 싣기로 했다. '시 제1호'가 7월24일에 실리고 매일 연작시가 실리기 시작했다.

 

시 제2호

 

나의아버지가나의겨테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웨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웨드듸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조선중앙일보 7월25일)

 

오감도가 신문에 실리자 독자들사이에 항의가 빗발쳤다.

당시에는 문맹율도 높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신문이라는 매체는 소위 식자층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정보유통의 창구이자 나름 본인의 유식을 뽐낼 수 있는 도구였다. 이런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따위 시를 실을 거면 당장 신문을 폐간해 버려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일부 과격한 독자들은 "이런 미친놈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상이라는 놈을 죽여야 한다."라는 과격한 발언까지 내뱉을 정도였으니 그 항의의 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결국 30편의 연작을 예정으로 시작된 이상의 오감도는 15호까지만 신문에 게재되고 중단된다.

 

1934년 7월24일은 한국근대문학의 문제작 '오감도'가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된 날이다.

 

 

사족

이상 (본명: 김해경) (1910~1937)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건축가.

폐결핵으로 일본에서 사망. 화장되어 미아리 공원묘지에 안장되었으나 돌보는 사람이 없어 방치되었다가 6.25전쟁후 미아리공원묘지가 없어지면서 그의 묘지도 유실되었다.

 

나는 아직 그의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

저명한 학자들의 해석을 읽어도 무슨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않는다.

가장 유명한 해석으로 권영민 교수의 해석이 있다. 

 

 

*여러분의 공감과 구독은 블로그 운영에 큰 힘이 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