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록의 힘
역사속 오늘

7월26일 - 포츠담선언.

by 죽은척하기 2022. 7. 26.
왼쪽부터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총리, 해리 트루먼 미국대통령 , 스탈린 소련 서기장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1945년 5월9일 독일군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유럽전선에서의 2차세계대전은 마무리 되었고, 남은 것은 태평양전선에서의 일본군과의 전쟁뿐이었다.
연합국의 지도자들이 독일근교의 포츠담에 모였다. 2차세계대전 전후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고 독일에 대한 제재를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미국대통령 해리 트루먼, 회담이 있기 직전 선거에서 처칠을 누르고 총리에 오른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 소련의 서기장 스탈린 등이 참석했다. 중국의 장제스는 본토에서 중일전쟁중이었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고, 추후에 서명하는 것으로 양해를 구했다.

독일, 오스트리아는 영국, 미국, 소련, 프랑스가 분할하여 통치하기로 결정되었다.
독일이 전쟁 배상금으로 연합국에 지불해야 할 돈은 230억 달러로 결정되었고, 지불은 대부분 산업시설과 기계류들을 가져가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독일의 재도발을 막기 위해 비무장이 결정 되었으며, 전범의 처리를 위한 뉘른베르크재판도 이때 결정되었다.

회담 중 7월26일 미국의 제안으로 일본에 대한 항복의 요구와 전후 일본에 대한 처리문제가 논의 되었고 이 논의에 대한 합의내용이 ‘포츠담선언’이다.
포츠담회담에 참석했던 소련은 이 선언에는 서명하지 않았는데, 이 때는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기 전이었기 때문이었고, 결국 서명은 미국, 영국, 그리고 중국의 장제스가 했다.

일본은 이 선언문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전 국민 옥쇄’등을 부르짖으며 전쟁을 지속했고 결국 8월6일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얻어맞는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소련이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8월9일 새벽 만주와 한반도북부에 진출하며 전쟁에 뛰어들었고, 일본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있다가 8월9일 나가사키에 다시 한 번 핵폭탄이 투하되고 난 이후에야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본 지도부의 분열로 번복되었다가 8월15일에서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포츠담 선언의 8항은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은 이행되어야 하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될 것이다.”라는 이 조항에서 언급된 카이로선언의 모든 조항 중에는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앞의 3대국은 조선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라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한반도는 1943년 카이로선언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최초로 독립을 보장받았고, 독립보장의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승인을 ‘포츠담 선언’을 통해 얻게 된 것이다.

1945년 7월26일은 한반도의 독립을 국제사회로부터 보장받은 ‘포츠담선언’이 있었던 날이다.


*여러분의 공감과 구독은 블로그 운영에 큰 힘이 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