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메이크판이 원작을 넘어서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원작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라면 일은 더 어려워진다.
원작에 충실하면 "새로움이 전혀 없는 베끼기 수준의 망작" 이라면서 이럴 거면 뭣 하러 리메이크판을 만들었냐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원작에서 모티브만 가져온 채 다른 각색으로 만들면 "이게 무슨 리메이크냐, 전혀 다른 작품을 제목만 훔친것 아니냐"며 비난을 쏟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메이크 판을 제작하는 이유는 이런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도 남을만한 화제성에 그 원인이 있다.
히트한 원작을 리메이크해서 제작한다는 결정을 알림과 동시에 언론을 통해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 제작과정 하나하나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원작과 비교해가며 가상의 캐스팅을 하고, 스스로 각색된 시나리오를 준비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화제성은 창작물로는 어지간히 인지도가 높은 감독이나 유명배우의 캐스팅이 아니고서는 쉽게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일이라서 투자를 하는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히트한 원작을 리메이크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넷플릭스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2021년 대한민국 컨텐츠가 K열풍을 일으키며 넷플릭스의 매출상승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킹덤’으로 시작된 ‘K’열풍은 ‘오징어게임’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고 웬만한 대한민국 드라마나 넷플릭스 오리지날 시리즈들은 공개가 되자마자 차트의 상위권을 휩쓸었다.
넷플릭스의 구독자 증가에 이른바 ‘K컨텐츠’가 대단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한 넷플릭스 에게 ‘오징어게임’이 나오기 전 비영어권 시리즈물로는 최고를 기록하고 있었던 ‘종이의 집’을 대한민국에서 리메이크 한다는 건 최고의 말에 최고의 기수를 앉히는 것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오게 된 시리즈가 이번에 공개 된 ‘종이의집 - 공동경제구역’이다.
2026년 한반도의 전면통일을 앞둔 시점을 배경으로 남북한 공동화폐를 찍어내는 조폐국을 터는 강도단의 이야기다.
며칠 전 우려를 섞은 전망을 글에 싣기도 했지만 스페인의 원작을 무척 재미있게 본 나로써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특히 1화는...
어디서 본 듯한 클리셰로 범벅된 대사. (다행히 “선수입장”은 안 나왔지만 “모두 대기들 타시고”라는 대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남북한의 마찰을 그리고 싶어서 사용 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어색한 사투리의 향연. (그 많은 사투리 능력자들은 왜 캐스팅 되지 못했을까?)
어색하기 그지없는 작전지시와 계획의 프리젠테이션에 사용되는 그 정형화 된 말투들.
연기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사건을 설명하는 나레이션에는 부적절한 것처럼 보이는 대사 톤.
기본줄기에 대한 각색이 별로 없어 원작을 본 관객이라면 스릴이나 서스펜스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모든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3화까지를 잘 넘기면 나름 볼 만한 드라마다.
큰줄기는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잔가지의 이야기는 한반도의 상황에 맞게 변주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보인다.
원작을 보지 않았던 관객이라면 재미있게 볼 만할 수준의 드라마다.
사족
1. ‘응답하라 시리즈’를 탄생시킨 신원호 감독의 캐스팅 기준은 첫 번째가 ‘사투리 네이티브스피커’ 였다고 한다.
자연스런 말투가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인지한 연출은 간혹 오글거리는 대사도 큰 거부감 없이 들리게 하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는걸 신원호는 알고 있었던게 아닐까?
2. 거슬리는 말투 때문이었을까? 내가 말투에 예민한 탓일까?
좋은 연기자들의 연기가 따로 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3. 국내에서 원작팬들의 혹평이 이어지는 것과 달리 오늘 현재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에서는 전체 2위에 오르는 흥행 성적을 기록중이다. (플릭스패트롤 집계기준)
4. 시즌2가 현재 후반작업중이라고 한다.
원작과는 다른 설정을 많이 준비 했다는 감독의 말에 기대를 걸어본다.
5. 엔딩곡으로 나오는 '행복의 나라로'.
한대수의 원곡은 장조의 반주로 밝은 희망을 노래하지만 드라마의 엔딩곡은 가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의 반주로 교수일당의 불안하고 모순된 심정을 대변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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