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1956년 이른 봄, 서울 명동의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경상도집'에 문인 몇몇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고, 마침 그자리에는 가수 나애심도 있었다.
일행이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였으나 나애심은 노래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당대 문인중 최고의 멋쟁이였던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즉석으로 시를 써 내려갔다.
그 시를 넘겨다 보던 이진섭이 그의 시를 받아 단숨에 악보를 그려냈고, 그래서 탄생한 곡이 '세월이 가면'이라고 한다.
짧은 평생을, 동료 문인인 김수영의 표현대로 하자면, '유행숭배자'로 살아 왔지만 박인환의 유행숭배는 자신의 우울함을 달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 술과, 담배로 자신의 명을 재촉했고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시인장으로 망우리에 묻힐 때 친구들은 그가 살아 생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조니워커'와 '카멜담배'를 함께 묻어주었다고 한다.
사족
1. 소설가 이봉구의 단편 '명동'에는 이 일이 있었던 장소가 '경상도집'이 아닌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은성'이고 노래를 부른 가수는 나애심이 아니라 '신라의 달밤'을 부른 현인으로 등장한다.
어느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2. 1970년대에 젊은 시절을 지나온 분들에게는 가수 박인희의 노래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3. 사진은 지난 가을 안양천변에서 찍었다.
입추와 처서가 지났다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계절이 곧 가을로 들어설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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