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상이 처음 나타난건 열여덟 생일날이었다. 병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그날 이후 자고 일어나면 매일 모습이 바뀌었다.
아저씨로, 아줌마로, 외국인으로, 어린아이로, 여자로, 남자로, 할머니로, 할아버지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시간이 흘렀고 연락을 끊고 살던 상백이가 술에취해 내 안부를 묻기위해 찾아왔다.
하필이면 엄마또래의 아줌마의 모습일때.
아줌마의 모습인채로 내가 우진이라고 상백이에게 고백했지만 당연히 믿지 않았다.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일본배우가 아오이 소라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내 비밀을 아는 사람이 엄마와 상백이 둘로 늘었다.
직업을 가져야 했다.
가구디자인을 시작했고 내가 디자인한 가구를 만들어서 인터넷으로 팔았다.누구와 마주칠 일 없이 만들어서 팔 수 있는 판매시스템은 나같은 사람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가구는 생각보다 잘 팔렸다.
다른 대형 가구회사에 다니던 상백이는 내 디자인을 베끼는 회사에 염증을 느끼고 나와함께 창업했다. 회사이름은 알렉스.
나는 만들고 상백이는 팔았다.
디자이너의 신비주의 컨셉에 가구는 오히려 더 잘 팔렸다.
매일 바뀌는 얼굴로 사랑은 불가능 해 보였고, 괜찮은 외모일때 원나잇을 즐겼다. 물론 다음날 아침 상대방이 눈을 뜨기전에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지만...
가구에 사용할 소품을 구입하러 오픈형 가구매장인 마마스튜디오에 들렀다.
거기서 마주친그녀. 홍이수. 흰 백도복숭아같은 미소를 가진 그녀를 처음 보았다.
말간 미소를 지닌 그녀와 연애를 하고 싶었다.
매일 마마스튜디오에 매일 다른모습으로 가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에겐 매일 다른 손님이었겠지만 내겐 매일이 그녀와 만나는 날이었다.
만족스런 모습으로 일어난 날,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초밥이 좋아요, 스테이크가 좋아요?"
정중한 거절. 그러나 물러설 순 없다.
"엄청 연습했거든요. 오늘 꼭 그쪽이랑 밥먹고 싶어서."

알렉스의 창고에서 초밥을 먹으며 시작된 데이트.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또 달라질 내 모습.
안자면 되지. 안 잘거야 평생.
며칠의 꿈같은 데이트가 끝나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이제 그녀가 모르는 다른 모습이 된 나.
이렇게 그녀앞에 나타날 수는 없었다.
나에 대한 고백을 준비했다.
여성의 모습으로 변해 마마스튜디오에 인턴으로 들어간 날,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
매일 일기처럼 녹화한 매일 다른 모습의 나를 보여주었다.
당황하고 놀란 그녀는 나를 스토커 취급하며 돌아선다.
며칠이 지나고 그녀가 다시 집으로 찾아왔다. 함께 밤을 보내며 그녀에게 나의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이제 나는 매일 바뀌는 모습으로 마음편히 그녀와 데이트를 한다.
어린아이로, 또래의 여자로, 잘생긴 남자로, 범죄자처럼 생긴 아저씨의 모습으로.
매일이 즐거울 줄 알았지만 힘들어하는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긴 매일 모습이 바뀌는 사람과 하는 사랑이 어떻게 즐겁기만 할까.
떠나는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눈이 내리는 어느날 밤 담담히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헤어지자. 그게 좋을것 같애. 그약도 그만먹구. 응? 감기들겠다. 얼른 들어가."
먼 나라로 떠나왔다.
시간은 흘렀고 거기서도 나는 매일 모습이 바뀌며 가구를 디자인하고 살고 있다.
상백이를 찾아갔던 그녀는 거기서 내 흔적을 발견하고 그 먼나라까지 나를 찾아 왔다.
나는 그녀를 모르는 척 하지만 그녀는 나란걸 알고있다. 그리고는 내게 말한다.
"난 니가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없어. 이렇게 매일 다른 보습이어도 괜찮아. 다 같은 너니까. 니 안에 김우진을 사랑하는 거니까. 미안해 오래걸려서. 우진아 나랑 결혼할래?"

사족
1. 인텔&도시바 광고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광고는 2012년 칸 국제광고제에 출품되어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리오 국제광고제에서도 금상을 수상했다.
2. 2015년 CF감독 출신인 백종열의 영화 데뷔작이다.
홍이수역의 한효주와 상대역으로 나온 배우는 총 146명이고 대사가 있었던 주요배우만 21명이다.
3. 조영욱 음악감독이 만든 OST는 한곡 버릴게 없는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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