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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7월 13일 - 프리다 칼로, 행복한 외출을 떠나다.

by 죽은척하기 2022. 7. 13.
프리다 칼로


여섯살에 소아마비를 앓고, 열여덟살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온몸을 관통한 쇠창살, 11개로 조각난 다리, 으깨진 어깨와 발, 골절된 쇄골과 갈비뼈와 골반과 척추.
퍼즐을 맞추듯 그녀의 몸을 조립한 의사들은 걷기는 커녕 생명조차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살고 싶었고, 깁스를 하고 누워있는것이 끔찍하게 지루해서 무엇이든 해보기로 했다. 나의 그림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평생에 걸친 32번의 수술,
보장구와 진통제 없이는 서있기도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들. 사랑은 아예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집에 와서 내 그림을 평가해 주세요."
그녀의 솔직함과 당돌함에 반한 멕시코의 중견 화가는 21살 연하의 프리다와 결혼한다.
그녀가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한 이 세상의 유일한 사람.
디에고 리베라.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디에고의 외도. 급기야 프리다의 동생과 딴 살림을 차린다.

자화상

이혼을 결심한 그녀는 남편이 그토록 좋아하던 긴 머리카락과 토속의상을 벗어던지고 유명인의 아내가 아닌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화가로 다시 태어난다.

1939년 '루브르에 초청된 멕시코 최초의 화가'.
전시된 그림은 대부분 자화상 이었다.
"나는 혼자일 때가 많았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소재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고통과 고독, 세번의 임신과 세번의 유산, 상처입은 영혼.
하지만 그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치열한 자기 응시.
"울고싶을 때면 나는 우는 대신, 울고있는 내 모습을 그렸다."

프리다 칼로 - 부서진 척추


모두에게 쉽게 허락되는 건강도, 아이도, 사랑도 얻지못한 프리다 칼로.

1954년 그녀의 마지막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1954년 7월 13일.
그녀는 마침내 병원의 침상에서 진통제와 석고, 강철 코르셋과의 힘겨운 전쟁을 마감한다.

(EBS '지식e season3. No 09. 프리다' 에서 발췌)

사족

1. 프리다 칼로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분류 되기도 하는데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인 앙드레 브루통이 "뛰어난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프리다를 극찬하자 "내 그림은 초현실주의가 아니다. 나는 꿈이 아니라 내 현실을 그리는것."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2. 2003년에 셀마 헤이엑을 주연으로 전기영화 '프리다'가 개봉되었다.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과 음악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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