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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의 힘
역사속 오늘

7월8일 - 김일성 사망

by 죽은척하기 2022. 7. 8.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알리는 호외


1994년 7월9일 정오.
신문사들이 호외를 뿌렸다.
김일성주석 사망.

“또 오보 아니야?”
1986년 11월16일 이미 한차례 김일성이 피격되어 사망했다는 국내언론의 오보를 접했던 사람들은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알리는 TV화면에 북한의 애도방송이 보도되고 ‘전군비상경계령. 휴가군인 복귀’라는 자막이 계속되자 사람들도 김일성의 사망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
1994년 3월 19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 회의 중에 북한의 박영수가 한 발언으로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극대화 되면서 사재기 열풍이 한번 일어난 뒤, 평화사절단 비슷하게 미국의 지미카터 전 대통령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만나러 평양에 방문 했고, 방문의 성과로 7월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게 된다.

그런 역사적인 회담을 20여일 앞두고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터진 것이다.
당시 통일비서관을 지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2015년 YS 추모 칼럼에서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렸다면 추진력 강한 YS가 임기 동안 남북 관계를 확실히 발전시켰을 것이고 DJ가 그 바탕 위에서 더욱 진전시켰을 것이며 노무현대통령도 그 방향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말하고 “남북 관계 개선이 구조화됐더라면 (그 이후) 보수 성향 대통령도 그 흐름을 뒤집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한반도 평화정착의 기회가 날아가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보도는 7월9일에 되었지만 북한에서는 1994년 7월8일 새벽2시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고 17일날 장례식이 거행 된다고 발표했다.

1994년 7월8일은 한반도에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남긴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주석 김일성이 사망한 날이다.

사족

유난히 뜨거웠던 1994년 여름.
김일성의 사망으로 촉발된 '조문파동'은 정치권에 날선공방을 불러일으켰고, 서강대 박홍총장의 “주사파 뒤에 사노맹이있고 그 뒤에 북한의 사노청과 김정일이 있다.”는 발언으로 매카시즘 광풍까지 불러일으켰으며 그에 따라 정국은 소위 ‘신공안정국’으로 흘러가게 되면서 ‘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의 분위기에서 다시 남북한 ‘적대관계’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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