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갈지는 몰랐다.
1842년 1차 아편전쟁의 승리로 영국은 청나라로부터 홍콩섬을 넘겨받는다.
2차 아편전쟁에서도 승리한 영국은 1860년 구룡반도마저 넘겨받아 홍콩의 경계를 넓힌다.
그것으로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1898년 신계지구를 마지막으로 넘겨받아 지금의 홍콩의 영역을 확정했고 ‘영구소유’가 아닌 ‘99년 임차’를 내용으로 하는 조약에 서명한다. ‘99년 임차’였지만 실제로는 반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영국은 대영제국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영국의 편이 아니었다.
세상은 한치 앞을 예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한 변화를 맞이했다.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던 영국은 두 차례의 전쟁과 신생국들의 독립운동 결과로 대부분의 식민지를 잃고 대영제국의 지위를 잃었다.
임차기간 99년의 종료가 다가오고 있었다.
1982년 마거릿 대처는 중국의 주석 덩샤오핑에게 임차의 10년 연장을 요구했지만 ‘흑묘백묘론’을 들고 중국의 부흥을 외치며 힘을 키우고 있던 중국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1984년까지 중국과 영국은 협상을 이어갔고 결국 중국과 영국간에 ‘홍콩반환협정’이 맺어졌다. 1997년 7월1일을 기점으로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고 최소 50년간은 ‘일국양제’체제를 통해 현 상태를 유지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1997년 6월30일.
홍콩정부청사에 게양되어있던 영국국기 ‘유니언 잭’이 내려오고 이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이날 영국군은 홍콩에서 전면 철수하게 되고 중국인민해방군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다음날인 7월1일.
홍콩정부청사에 중국국기인 ‘오성홍기’가 게양되며 홍콩은 99년만에 중국으로 반환된다.
1997년 7월1일은 영국령이있던 홍콩이 중국에 반환 된 날이다.
사족
반환시점이 다가올 즈음 당시 아시아의 헐리우드였던 홍콩영화계는 홍콩젊은이들의 방황과 허무를 그린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시절을 대표하는 감독이 왕가위다.
그의 영화는 감각적이고 끈적한 카메라와 허무주의에 가까운 내용으로 당시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못한 듯 한 홍콩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려내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대표적인 영화가 ‘중경삼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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