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1일. 강남 서초동 한복판에 당시 단일매장 규모로는 2위인 삼풍백화점이 문을 연다.(당시 1위는 명동 롯데백화점)
2호선, 3호선 교대역과 가까운 위치에 초호화 명품브랜드를 유치시켜 당시 강남권 부유층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으로 근무한 이력을 발판삼아 퇴직 후 건설사업에 뛰어 든 이준은 1980년대 백화점 건설 붐이 일자 자신 소유의 부지와 인맥을 통해 백화점사업에 직접 뛰어들 결심을 하고 원래 아파트부지로 허가가 나 있던 땅을 로비를 통해 용도변경하여 삼풍백화점을 세우고 직접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태생부터 로비와 불법으로 얼룩진 백화점이 건설이라고 부실과 비리가 없을 리 없었다.
실내를 넓게 보이게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기둥의 수를 줄이고, 기둥의 두께를 줄이는 등의 부실공사가 이어졌고, 백화점을 개점한 이후에도 불법증축과 에어컨 냉각탑 설치등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부실관리가 이어졌다.
사고의 전조는 사고 2개월 전인 4월부터 있었다.
5층 식당가에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하여 5월에는 균열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5층을 폐쇄하고 전문가들을 불러 기본적인 검사를 실시한다.
당연하게도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백화점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영업을 강행한다.
붕괴 전날인 6월28일.
옥상의 무량판을 기둥이 뚫고 나오는 펀칭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이미 이때부터 붕괴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현상이었지만 보고를 받은 경영진이 비상사태임을 깨닫고 회의를 대책회의를 시작한건 다음날인 6월29일 아침부터였다.
경영진은 B동 회의실에 모여 균열이 발생한 식당의 휴업을 지시한다.
그리고 회의 끝에 그날 영업이 끝나고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경영진이 사고를 막기위해 실제로 조치를 취한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셈이다.
결국 1995년 6월29일 저녁 5시 52분.
삼풍백화점의 붕괴가 시작되었고 불과5분만에 총 507명의 사망자와 실종자 6명, 부상자 937명을 내고마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다.
1995년 6월29일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소중한 생명들이 사라져 간 날이다.
사족
1. 이 사고에 대한 방송으로 최근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2”가 있었는데 통제불능에 빠진 현장에 들어가 물건을 들고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방영되어 방송을 보는 사람들의 울분을 터뜨리게 했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이때 절도로 신고된 사람이 400명에 이른다고 한다.
2. 현재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주상복합 아파트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가 지어져있다.
9.11테러 후 뉴욕시는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에 ‘그라운드제로’를 만들어 사고를추모하고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지만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린 자리에는 아무일도 없었던듯 고급아파트가 들어 서 있고 삼풍백화점 위령탑은 ‘땅값’과 '주민반대'라는 이유를 들어 사고현장에서 5Km떨어진 '양재 시민의숲' 한구석에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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