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스타인 베블런이 자신의 책 ‘유한계급론’에서 유한계급의 과시적소비를 언급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인 1899년이었지만 그의 주장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유효하다.
현재 우리사회는 소위 ‘명품’으로 일컬어지는 사치품들의 수요가 연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부유층의 소비도 있겠지만 부유층의 사치를 모방하려는 욕구를 가진 중류층의 소비도 ‘오픈런’이라는 기이한 사회현상을 일으킬 만큼 사치품 수요의 상승곡선에 보탬을 주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개인 SNS를 통해 ‘좋아요’를 받으며 인간의 기본적 심리중 하나인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개인들은 명품을 몸에 두른 자신의 모습과 유명관광지나 호화로운 숙소에서 휴가를 보내는 모습, 또는 유명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 더 많은 ‘좋아요’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과시적 소비’를 위해 노력한다.
과시적 소비와 인정욕구의 충족이라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결국 돈이다.
현대사회는 레거시 미디어에 의해서나 유명인이 될 기회가 생겼던 과거와 달리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등 개인 미디어라는 과거보다 손쉬운 통로를 이용해 유명인이 되고 그 유명세를 이용해 부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그렇게 유명세를 얻은 개인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쉽게 부를 획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쉽게 돈을 벌수 있다는 환상 또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애나 소로킨에게 이런 SNS들, 특히 별다른 텍스트 없이 사진을 통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과시하는 인스타그램은 자신의 사기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였다.
그녀가 호화로운 호텔이나 관광지에서 찍어 올린 사진들은 그녀가 독일에 어마어마한 신탁자산을 가지고 있는 상속녀라는 거짓말을 증명 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로 사용 되어졌고, 그녀의 돈에 매료된 유명인들은 그녀와의 인연을 맺기 위해 노력했으며 기꺼이 그녀와 사진을 함께 찍고 호화로운 파티에 그녀를 초대 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과 그녀의 그럴듯한 사업계획에 매료된 부자들의 허영심과 그것에 기댄 유명세를 무기로 애나 소로킨은 유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은행을 상대로 거액의 투자사기를 벌이다가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간 모로코 여행에서 자신을 대신해 62,000달러의 호텔 비용을 물게 된 레이첼 윌리암스의 고소로 경찰에 체포되기에 이른다.
그녀가 그녀의 지인들을 대상으로 친 사기금액은 275,000달러. 한화로 약 3억3천만원 정도로 생각보다 크지 않은 금액이었고, 애나소로킨은 4~12년의 징역과 벌금 24,000달러, 보상금 199,000달러의 형을 받고 수감된다. 만일 그녀가 처음 검찰측에서 제시한 형량거래 대로 본인의 죄를 인정했다면 1년정도의 수감 생활만 했으면 될 일 이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결국 4년이상 12년이하의 징역형과 거액의 벌금형을 받게 된 것이다.
드라마는 한 여성 저널리스트가 애나 소로킨의 사기행각을 취재 하면서 벌어진 일들을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시선에 빗대어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애나 소로킨의 환상적인 사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저 정도의 인물들이 그렇게 허술한 거짓말과 사진 몇 장에 속아 넘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냉소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
애나 소로킨은 정말로 자신이 재단을 설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은행에서의 대출만 성공 했더라면 아마도 정말로 재단을 설립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로 재단의 운영자가 되어 그녀가 꿈꾸던 뉴욕 사교계의 중심에서 유명인의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돈 많은 유명인이 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사는 삶. 그것이 애나 소로킨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어했던 인생이었고,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꿈을 이룬 셈이다.
사족
1. 불과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포항의 가짜 수산업자 김태우 사기사건으로 유명 정치인과 언론인, 그리고 검사들까지 연루된 사건이었고, 사건을 일으킨 김태우도 고가의 자동차 사진등을 보여주고 선물 공세를 하며 유명인들과 사진을 찍고, 소개를 받는등 인맥을 쌓아나가면서 총 116억원의 사기를 치다가 구속되었다. 그는 현재 징역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중이다. 물론 이 사건도 이를 지켜본 국민들에게 냉소를 불러 일으켰다.
2.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만들어 졌는데 넷플릭스는 애나 소로킨에게 32만달러를 주고 이 이야기의 판권을 구입했다.
애나 소로킨에게 호텔비로 62,000달러를 사기당한 레이첼 윌리암스는 후에 ‘내 친구 애나: 가짜 상속녀의 진짜 이야기’를 책으로 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며 최근 HBO에서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이 책의 판권을 33만 5천달러에 구입하는 등 이 책으로 약 60만 달러의 수입을 얻었다고 한다.
3. 애나 소로킨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 비비안을 연기한 배우 안나 클럼스키는 그 옛날 매컬리 컬킨과 함께 ‘마이걸’을 찍은 그 소녀다. 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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