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PO는 Exposition internationale의 줄임말이다. 세계 박람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1851 런던 엑스포를 실질적인 세계 박람회로서의 시초로 꼽는다.
산업혁명이후 유럽의 열강들을 중심으로 제국주의가 전 지구를 덮쳤던 시절 세계 박람회는 자국이 얼마나 발전되었고 선진화되었는지 과시할 절호의 기회였고 각 나라의 과학적, 예술적, 문화적인 걸작들이 출품되어 한 자리에 모이는 세계 교류의 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의 국가원수들이 직접 나서서 엑스포 개최를 도모했고 초기의 위상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한참 넘어선 국제행사였다.
때문에 주로 선진국들이 유치에 나서 개최하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엑스포 행사를 치루는 국가는 선진국’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되었다.
1988년 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한데 자신감을 얻은 노태우 정부는 1989년에 엑스포 개최의지를 천명하고 유치활동에 들어간다. 국제행사의 유치와 개최가 국가와 정권의 자부심이었던 시절이었다.
부정적이었던 여론을 뒤로하고 선진국 위주였던 세계박람회에 이제는 개발도상국의 참여도 주도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명분으로 결국 1990년 총회에서 1993년 엑스포를 대한민국의 대전에서 개최하는 것이 결정된다. 1893년 미국 시카고 엑스포에 처음 참가한지 꼭 100년이 지나서 우리나라에서도 엑스포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박람회를 위해 총 1조7180억원의 재원을 투자했다. 대전엑스포 직접 관련 사업인 회장 건설 등에 4000억원을 투자한 것 외에도 기반시설 확충 사업에 2000억원, 고속도로 확장 등 주변 여건 조성 사업에 7000억원을 쏟아부었다. 국내외 전시 참가자들도 전시관 건설에 모두 3000억원을 투자했다.
1993년 8월7일부터 11월7일까지 대전의 대덕연구단지 일대에서 93일간 ‘대전 엑스포’가 열렸고 관람객의 수가 1,450만 명에 이를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TV방송3사가 엑스포 관련 프로그램을 특별편성해서 매일 2시간씩 내보냈고, 대전과 충청지역은 물론 거의 모든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견학 겸 소풍으로 대전 엑스포를 참관하도록 하는 정부차원의 ‘권고’도 흥행에 한몫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징물인 한빛탑과 마스코트인 꿈돌이도 인기를 끌었고, ‘도우미’라는 행사진행요원에 대한 명칭도 이때 생겨났다.
각 기업이 제공한 전시관들 중 삼성물산의 우주탐험관이나 럭키금성(지금의 LG)에서 제공한 테크노피아관의 경우 행사기간 중에는 4~5시간정도의 대기시간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3년 8월7일은 대전에서 ‘93대전 EXPO’가 개최된 날이다.
사족
엑스포 폐막이후 놀이공원의 형태로 운영되다가 1997년 IMF로 직격탄을 맞고 2014년 11월 부터 철거를 시작하여 지금은 철거가 완료 되었고 철거한 부지에는 스튜디오 큐브, 신세계컨소시엄의 대전 사이언스콤플렉스, 기초과학연구원 본원이 들어서 있고 엑스포 과학공원으로 조성되어 한빛탑과 음악분수등만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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